넥슨에게 있어서 ‘제라’라는 이름은 큰 상처 중 하나다. 카트라이더를 앞세운 캐주얼 게임들로 온라인 게임업계의 공룡으로 성장한 넥슨은 2006년 100억을 들인 블록버스터 대작 제라를 발표하며 그라나도 에스파다, 웹젠의 썬과 함께 ‘빅3’로 불리며 새로운 MMORPG의 전성기를 열어젖히려 했다. 대형 게임회사들이 가지고 있는 주력작이자 한 풀 꺾인 블록버스터 MMORPG에 새로운 바람과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넥슨의 야심도 어느 정도 들어가 있기도 했다.
시장에 제라의 면모를 조금씩 공개하기 시작한 넥슨에게 많은 유저들의 관심이 쏠렸다. 화려한 그래픽으로 무장을 한 압도적인 비주얼은 사람들의 이목을 이끌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G스타 등에서 그 모습을 조금씩 공개하면서 다른 100억 대작 MMORPG들과 함께 시장을 이끌 것이라고 지목을 받았다.
하지만 오픈베타 이후 제라의 성적은 ‘대실패’로 그치고 말았다.
△ SP1은 최근 인기 게임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된 게임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게임성이 유저들의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높은 컴퓨터 사양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밸런스의 문제, 콘텐츠 부족 등 여러 방면에서 높아져 있는 국내 유저들의 눈을 만족시키지 못한 채 ‘그래픽이라는 껍데기만 좋을 뿐’이라는 혹평을 들으며 시장에서 그 자취를 감췄다. 현재 유저들에게 제라라는 이름은 뇌리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그렇게 넥슨의 첫 번째 블록버스터 MMORPG도전기는 100억 대작의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그렇게 쓰디 쓴 패배의 잔을 들이킨 넥슨에게 있어서 이번 SP1(SilentPlot1)은 중요한 터닝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제라와 같이 자체적인 제작 인력을 들여서 만들어 낸 게임은 아니지만 넥슨의 이름을 걸고 세상에 두 번째로 공개하게 된 블록버스터 MMORPG이기 때문이다. 넥슨은 SP1을 스릴러와 모던풍의 판타지를 접목한 한국형 정통 MMORPG라는 게임의 특징을 앞세워 시장에 내 보냈다.
일단 SP1이 유저들과 시장에서 받은 평가는 긍정적이다. 외형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게임 내적, 그리고 분위기까지 유저들의 취향에 걸맞는 수준의 게임이라는 평가다. 오픈베타를 하기도 전에 유저들의 폭발적인 반응은 SP1을 게임 인기순위 상위권에 랭크 시키는 기염을 토하게끔 했다.
SP1이 국내 유저들에게 어필을 한 것은 외형적인 면이 상당히 컸다. 게임은 공개되기 전 이미지메이킹이 상당히 중요하다. 귀여운 게임은 귀여운 매력으로, 웅장한 게임은 영화 반지의 제왕을 연상시키는 면들을 부각시키기 마련이다. 게임이 아무리 재미없더라도 이미지메이킹을 사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유저들의 첫 평가나 게임의 흡입력 자체가 달라진다. 게임 마케팅에서 ‘상품의 질이 떨어져도 그것을 예쁘게 포장하면 평가가 다를 수 있다’라는 말이 있듯, 그 만큼 첫 인상이라는 이미지메이킹, 이미지마케팅은 상당히 중요하다.
그렇다면 SP1는 어떨까. 게임이 공개되기 전 SP1은 그 특유의 음울하고도 음산한 분위기를 내세워 유저들에게 어필하기 시작했다. 콘솔 게임으로써 이미 그 게임성과 이미지를 인정받은 바 있는 사일런트 힐 시리즈를 연상케 한다는 유저들의 호평이 잇따른 것은 그 만큼 SP1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유저들에게 통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게임의 특화되어 있는 이미지를 부각시켜서 유저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마케팅 능력도 호평을 해 줄만한 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 로그인 화면부터 특유의 ‘스릴러 본능’은 자극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첫 인상, 이미지를 유저들에게 확실히 각인시키기 위해서는 게임이 가지고 있는 타고난 비주얼이 탁월해야 하는 법. 분위기 있는 비주얼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이미지메이킹이니, 좋은 첫 인상이든 뭐든 다 게임 본연의 힘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SP1은 다방면의 비주얼에서 분위기는 물론, 그 훌륭한 퀄리티까지 갖추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SP1이 처음 공개되었던 이미지들은 물론, 클로즈베타 전 개발사와 퍼블리셔인 넥슨에서 배포한 보도 자료에 등장한 SP1의 비주얼 수준은 유저들이 ‘이런 분위기를 가진 게임이 이런 그래픽 퀄리티를 가지고 있다면 대단할 것’이라는 말들을 했다. 그 만큼 기대도 했지만 의심어린 시선도 어느 정도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런 유저들의 의심어린 시선은 기우에 불과했다. SP1은 클로즈베타 때부터 오픈베타를 시작한 지금까지 게임이 갖추고 있는 최대의 그래픽 퀄리티를 유저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사일런트 힐을 이야기하는 유저들이 다수 있는 것처럼(최고 수준의 콘솔 게임의 그래픽과 그 분위기를 언급하는 것은 그 만큼 훌륭하다는 반증이다), SP1이 가지고 있는 비주얼 수준은 상당히 훌륭하다. 캐릭터들의 분위기와 음산하고도 유저들에게 오싹함을 전달해 주고 있는 배경들, 깔끔하고 부드러운 캐릭터 액션 등은 개발사인 실버포션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물리엔진이 그들의 그래픽 기술과 훌륭하게 융합했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 현실적이면서도, 몽환적이고 판타지스러움도 함께 겸비하고 있다
유저 인터페이스도 상당히 간편하게 구성되어 있다. 캐릭터 스킬창이나 아이템 창, 자잘한 인터페이스들이나 스탯창, 그것들을 알아볼 수 있는 스탯 게이지 바 등도 알아보기 편하고 간편하게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그래픽이 좋은 반면 간편함을 유저들에게 선사하지 못하는 다수의 게임들을 마치 비웃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그 만큼 화려함과 편리성을 동시에 유저들에게 주고 있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캐릭터의 구조 또한 유저들에게 충분히 어필할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직후의 배경에서 등장하는, 현실적이고 게임 배경과 잘 어울리는 캐릭터들은 개성과 깔끔함으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아직 캐릭터의 종류가 많지 않기 때문에 그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매력적인 디자인으로 만들어져 있는 캐릭터성은 SP1을 하는 유저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SP1을 처음 시작할 때 유저들이 느낀 감정은? 게임 케이블TV 채널에서 CM을 본 유저들도 있겠지만,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기반으로 한 게임, 스릴러와 외화 X-File을 볼 때 느꼈던 감정들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비주얼과 게임이 가지고 있는 외형적인 분위기 등은 언급했다. 그러나 게임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더욱 극대화시키고 있는 훌륭한 요소가 한 가지 더 있다. 그것이 바로 SP1의 BGM이다.
△ 보스몬스터를 대면했을 때의 그 느낌은!?
유명한 스릴러 영화에서 있을법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는 SP1을 보고 있노라면 유저들이 이전에 봤던 같은 장르의 명작 영화를 떠올릴 법 할 것이다. 음울한 분위기와 비극적인 모습들을 보여주는 어두운 느와르 영화들. 그런 영화들이나 영상물은 비단 그래픽만으로 보는 사람에게 자신들이 제작한 영화의 장점을 내세우고 있지 않는다. 눈과 함께 귀를 매료시켜야 보는 사람의 혼을 빼놓을 수 있다.
SP1은 게임을 제작하기 전 올드보이와 친절한 금자씨에서 OST를 작곡했던 영화감독 최승현씨와 손을 잡고 게임의 BGM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그런지 SP1의 BGM은 마치 올드보이와 친절한 금자씨에서 유저들이 귀로 들었던 특유의 음악들을 들을 수 있다. 이 음악들이 더욱 훌륭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은 SP1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비주얼 색이 음악과 너무나 잘 어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픽과 분위기 자체가 스릴러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기 때문에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충분했는데, 일반적인 게임 음악이라고 할 수 없는 훌륭한 사운드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게임이 외형적으로 갖추고 있는 요소들은 지금까지 등장한 국내 개발 게임들 중 최고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누군가가 담당했다’라고 자랑을 할 만큼 고급스럽다고나 할까.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BGM뿐만 아니라 타격음도 빼놓을 수 없는 SP1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MMORPG라는 게임의 특성 상 전투라는 것은 게임의 재미를 결정짓는 큰 요소 중 하나다. 전반적인 게임의 재미가 전투라는 점에 상당히 많이 치우쳐 있기 때문에 전투라는 요소가 재미가 없다면 MMORPG의 재미는 그야말로 반감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아무리 MMORPG의 전투가 재미있다고 하더라도 상당히 긴 시간 반복되는 전투가 계속되는, 유저들에게 다소간의 지루함을 줄 수 있는 것이 MMORPG의 전투이기 때문에 전투 자체가 재미없다면 그야말로 최악일 것이다.
△ 따르릉. 광고회사 전화가 아니라 꼭 받아야 하는 퀘스트 전화다
그런 전투의 재미를 결정짓는 첫 번째 요소가 바로 타격감이 아닐까. SP1의 타격감은 앞서 언급했던 캐릭터들의 부드러운 액션과 타격 효과, 그리고 훌륭한 타격음이 어우러져 충분한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SP1이 갖추고 있는 게임의 전반적인 내용들, 그리고 재미는 어떨까. SP1이 가지고 있는 콘텐츠를 차처 한다손 치더라도 SP1이 유저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게임 전개는 유저들에게 충분한 게임의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처음 게임을 시작하면 한국어 나레이션과 함께 게임의 배경과 사건들을 보여주는 인트로가 등장한다. 이 인트로가 자연스럽게 게임의 튜토리얼과 연결되어 놓칠 수 없는 스토리 전개와 게임의 기본적인 구조 등을 유저들에게 자연스럽게, 그리고 극상의 몰입도로 선사해 주고 있다. ‘뭔가 다르다’라는 느낌을 유저들에게 처음부터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퀘스트를 따라 가면서, 게임의 심상치 않은 스토리와 배경을 만끽하게 되는데 이 퀘스트를 받는 것이 바로 폰부스 시스템이다. SP1의 CM에서처럼 플레이어는 공중전화 박스, 즉 폰부스에서 퀘스트를 받게 되는데 퀘스트 노트에 퀘스트와 폰부스라는 탭이 따로 생겨서 유저들은 이를 분간해가면서 게임을 진행하게 된다. 물론 폰부스 시스템이 상당히 신선하다는 점이 있고 그 이상을 발견할 순 없었지만 신선함을 더해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실버포션이라는 게임 개발사는 유저들에게 다소 생소한 게임사이다. 그러나 세상에 자신들의 이름을 넥슨을 통해 알리는 그 결과물인 SP1은 대작 게임을 다수 만들어 낸 개발사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그 훌륭함은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국내에서 만들어 진 MMORPG중 최고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아직 과제는 있다. 캐릭터의 추가도 있어야 하고 캐릭터 밸런스가 미묘하게 맞지 않는 부분도 있어야 한다. 아이템의 쿨타임이 지나치게 길어 유저들에게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부분도 있으며, 왕성한 국내 유저들의 콘텐츠 소화력을 얼마나 잘 대처해 나가느냐에 대한 의문점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블록버스터 MMORPG라는, 방대한 세계관의 게임을 운영해 나가면서 계속해서 시장에 통할 수 있는 콘텐츠를 주기적으로 바닥나지 않게 만들어내는 것은 예상보다 훨씬 힘에 부치는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분명 지금까지 SP1이 시장에 어필하고 있는 매력과 그 재미는 상당히 강력하고, 또 유저들은 그 재미에 서서히 빠져들고 있다. 전문가들도 ‘소리 없이 강하게 준비되어 있었던’SP1의 매력이 2008년 어떻게 귀결될지에 대한 부분에 주목하고 있다. 그 만큼 SP1이 내포하고 있는 재미는 충분히 상당한 것이다.
근간에 나온 MMORPG중 오랜만에 등장한 수작, 아니 대작이 될 수 있는 SP1의 색다른 매력에 흠뻑 빠져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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