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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아카(AKA), 그래도 레서판다는 열심히 산다

작성자 :	등록일 : 2022-12-19 오후 5:27:53

네오위즈는 프랑스 개발사 코스모 가또(Cosmo Gatto)가 개발한 캐주얼 힐링 게임 '아카(AKA)를 12월 15일 닌텐도 스위치 및 PC 게이밍 플랫폼 스팀을 통해 정식 출시했다.

게임스컴 인디 아레나 부스 어워드에서 베스트 유니티 게임 상을 받은 작품이며, 게임스컴 2022 인디 커뮤니티 초이스 어워드에 선정된 바 있는 기대 인디 게임 신작이기도 하다. '산나비', '스컬'등 인디 명작을 다수 발굴해낸 네오위즈가 퍼블리싱을 맡아 출시 전부터 국내 인디 마니아들 사이에서 이름을 알린 바 있다.

'아카'에서, 유저는 퇴역 군인이자 참전 용사인 레서판다 '아카'가 되어 전쟁 후의 삶을 이어 나가게 된다. 한때 전우였던 친구의 초청을 받아들여 소나무 섬으로 가 마음의 평온을 얻고, 죽은 전우 나야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모험을 떠나야 한다.

게임 내용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참전용사의 여생을 다룬 힐링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힐링을 테마로 하는 유사 장르 타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큰 차이가 한 가지 있는데, 바로 나야의 유해를 가장 높은 산에서 뿌려준다는 목표가 있다는 점이다.

적지 않은 힐링 게임이 막연하게 '최고의 농장을 꾸리자'나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자' 같은 목표를 제시하며 자연스럽게 긴 플레이타임을 갖추게 된다. 그러나 '아카'는 명확한 목표가 있는 만큼 생각 외로 플레이타임이 길지 않다. 덕분에 긴 게임을 하기보단 동화책을 읽는 기분으로 플레이할 수 있었다.

목표가 뚜렷한 만큼 목표를 향해 가는 길도 명확하다. 유해를 뿌려야 하는 가장 높은 산인 카낙 산으로 가는 길은 감춰져 있지 않으며, 배를 수리하고 네 개의 섬을 드나들며 소소한 장애물을 돌파해 카낙 산으로 가는 길에 수수께끼나 거대한 난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목표를 향해 가는 길에 있는 곁가지 같은 일들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한다고 해서 보상이 크지도 않다. 섬에 널린 덫을 치우지 않아도 되고 죽은 소나무를 베어내서 다른 나무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지 않아도 된다. 잊혀진 유령을 외면해도 되고 아픈 아기 고양이를 무시할 수도 있다.

'아카'는 강요하지 않는다. 인디 게임 특성상 할 수 있는 일의 자유도가 아주 높은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일들을 반드시 하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저 눈에 밟혔기에 남을 돕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쓰레기를 줍게 될 뿐이다.

게임은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는 게 좋지 않겠냐며 유저를 설득한다. 보지 못해 지나가 버린 것들은 어쩔 수 없지만, 다른 누군가가 있는지 주변을 둘러보고 손이 닿는다면 손을 뻗어주기를 권한다.

'까짓거 도와주지 뭐'라는 생각은 유저를 자신도 모르게 한층 더 부드럽고 따뜻한 상태로 만든다. 그리 오래 걸리는 일도 아니니 방치된 덫을 줍고, 안 해도 되지만 할 수 있으니 샌드위치를 만들어 배고픈 아이에게 건네준다. 그렇게, 한층 더 성장하고 스스로를 위안하게 된다.

농장 경영물은 대체로 '갑갑한 일상에서 탈출해 평온한 삶을 산다'는 방식을 통해 힐링을 제시한다. 그러나 '아카'는 힐링을 강조한 작품임에도 그 방법으로 회피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대신 마주 보게 한다.

음습한 현실 속 문제를 직시하는 만큼 전반적인 게임 분위기는 부드러운 동시에 착 가라앉아 있다. 매우 깊은 숲속 나무 그늘 밑에 앉아있을 때 느낄 수 있는, 그렇다고 음울하거나 불쾌하지는 않고, 약간 눅눅하고 어두운 정도다. 딱 잔잔하게 몰입하기 좋은 무게감인 셈이다.

농사는 게임 안에서 중요한 축을 차지하고 있지만, 콘텐츠 분량이 방대하지는 않다. 대신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물마다 끌어들이는 벌레와 쫓아내는 벌레가 달라 여러 농작물을 함께 기르면 병충해에 면역인 밭을 구성 할 수도 있었다.

항상 완벽한 농사를 추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작물을 수확했을 때 씨앗이 확정 드랍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씨앗 획득을 전적으로 채집에 의존해야 했다. 각종 농기구를 종류별로 활용하거나 스프링클러 등 각종 장치를 도입하고 농산물로 다양한 부산물을 만들어 판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카'에서 제공하는 여러 콘텐츠처럼 농사 역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콘텐츠인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쩌면 농사 콘텐츠야말로 '아카'가 말하고 싶은 핵심 주제 중 하나를 상징하는 걸지도 모른다. 흘러가는 듯 그저 어쩌다 얻게 되는 씨앗을 소중히 가꾸며 살고, 완벽한 밭이 만들어지지 않더라도 마음에 여유를 두며, 수확할 때 씨앗이 나오지 않더라도 매사에 집착하지 않고 흘려보내는, 그런 이야기를 건네고 싶은 건 아닐까.

느긋하게 진행되는 만큼 날짜 변경은 농작물 성장 외에는 게임에 큰 영향을 주지 않지만, 낮밤의 변화는 즐길 수 있는 콘텐츠에 변화를 준다. 특히 섬 곳곳에 머무는 유령들은 밤에만 모습을 비춘다.

유령과 관련된 임무는 대체로 주인공의 지난 삶을 반추하는 이야기 들이다. 주로 전쟁, 특히 생존자의 딜레마 같은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내용들이며, 잊지 않고 받아들이되 어쩔 수 없던 일이었음을 상기하고 대신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자는 격려를 남긴다.

유령과 관련된 임무는 밤에만 진행할 수 있지만, NPC들은 대부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 자리에 있다. 아기용에게 밥을 주는 구드룬의 퀘스트 같이 누군가를 돕는 일은 언제나 해결할 수 있다. 타인을 돕는 데에는 시간 구분이 필요 없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구슬 미로, 카드 게임, 리듬 게임 같은 미니 게임도 섬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아카'에서 제공하는 각종 콘텐츠가 다 그렇듯이 게임에서 이긴다고 큰 이득은 없었지만, 완성도 높은 콘텐츠는 아니더라도 흥미롭게 즐길 수 있을 정도의 짜임새는 갖췄다.

미니게임으로 분류해야 할지 애매한 콘텐츠이긴 하지만, 멍하니 풍경이나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기능도 있었다. 주인공에게 몰입하고 플레이하다가 문득 바닥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면 꽤 뭉클해진다.

키보드 기준으로 거의 모든 조작을 왼손만으로 할 수 있게 설계된 독특한 방식을 택하고 있어 컨트롤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 일단 익숙해 지면 플레이에 큰 문제는 없다.

게임 패드로 플레이할 경우 조작은 매끄러웠지만 땅에 물을 주는 등 섬세한 작업을 하기는 어려웠다. 이 역시 마우스보다 뒤떨어질 뿐 익숙해지면 해결되는 문제이기는 했다.

다만 숫자 단축키 사용은 문제가 조금 있었다. 특정 행동을 할 때 선택지에 숫자가 붙어 나오고 숫자키를 눌러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있었는데, 인벤토리에서 진행하는 작업의 경우 인벤토리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단축키가 지정되어 있어 선택지를 누르면 해당 칸의 아이템이 선택되는 경우가 있었다.

이외에도 마우스 인식률이 높지 않다거나 UI에서 선택한 적 없는 아이템이 버려지는 버그가 종종 발생했는데, 퍼블리셔 측에서도 인지하고 있는 내용인 만큼 조만간 수정될 수 있을 전망이다.

번역이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다. 캐릭터 말투가 갑자기 바뀌거나 미번역된 부분이 종종 발견됐다. 게임을 재시작하면 정상적으로 번역되는 경우도 있었으나, 어떤 부분이 버그로 인한 타 언어 출력이고 어떤 부분이 단순 미번역인지는 구분할 수 없었다.

캐릭터 말투 문제는 여타 인디 게임 번역에서 종종 보이곤 하는 문제로 보였는데, 'ok' 나 'yes' 같이 자주 쓰이는 대사는 한 스크립트를 여러 상황에서 돌려 쓰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같은 'ok'라도 캐릭터성에 따라 다르게 번역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캐릭터 말투가 갑자기 바뀌는 듯한 느낌이 들게 된다.

인디 게임 업계에서는 흔한 일이고, 수정하려면 게임을 뜯어고쳐야 하므로퍼블리셔 입장에서 함부로 건드리기도 어려운 부분이다. 그러나 게임 시작 전에 한국어 설정 시 안내문 하나 정도는 띄워줘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작품 소개에서 '아카'가 강조하는 요소는 농사와 힐링이다. 그렇기에 극한의 농업 최적화나 반복 작업을 통한 자본의 축적을 통해 힐링을 이루는 농장 경영 시뮬레이션류를 떠올리고 '아카'를 접한 유저라면 게임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아카'는 일종의 사이코드라마다. 전쟁의 PTSD를 겪는 주인공을 직접 플레이하며 주인공이 겪은 과거에 몰입하고, 그 상처를 치유하거나 인정하는 과정을 바로 옆에서, 혹은 주인공이 되어 겪게 된다. 그렇게 상처와 후회를 인정하고 일어서서 앞을 향해 나아간다.

전쟁 PTSD를 주제로 삼았으나 언급되는 내용들을 전반적인 삶으로 확대해석해도 큰 문제는 없다. 전쟁이라는 건 결국 인생의 비참한 부분을 모아둔 구덩이 같은 행위이며, 그곳에서 겪는 상처는 하나하나 떼어보면 전쟁이 아니더라도 겪을 수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