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게임즈는 나인아크가 개발한 첫 작품인 '에버소울(EVERSOUL)' 서비스를 1월 5일 국내 정식 개시했다. 나인아크는 '영웅의 군단', '삼국지를 품다' 등 국내 시장에서 성과를 거둔 작품을 개발한 이들이 모여 설립한 개발사다.
'에버소울'은 캐릭터 수집형 RPG로, 접속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보상을 수집하고 획득할 수 있는 방치형(Away From Keyboard, AFK) 게임이다. 미소녀 캐릭터들과 유대관계를 키우고 교감하는 요소를 핵심 콘텐츠로 제공한다.
'에버소울'에서, 유저는 미래의 지구인 '에덴'에 사는 정령들을 구하기 위해 선택된 구원자가 되어 정령들을 규합하고 에덴을 침략한 적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
전반적인 게임 스토리는 무난한 편이다. 게임 전반에 걸쳐 결코 수준이 낮지 않은 3D 그래픽으로 구성된 연출과 풀 보이스 더빙이 제공돼 유저로 하여금 스토리에 한층 더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무난하다는 게 항상 좋은 뜻은 아니다. 정성 들인 연출과 별개로 메인 스토리가 특출나지는 않다. 서브컬쳐 장르에서 오랜 시간 쓰여온 전형적인 영웅담 구조를 띠고 있으며, 클리셰를 뒤틀거나 독보적인 연출을 통해 차별성을 주는 부분도 없다. 무난하고 안정적인 스토리지만, 다소 낡았다는 느낌을 버리기 어렵다.
설정만 따지면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에 가까우나 메인 스토리 내에서 해당 요소가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도 아쉽다. 매력적인 설정이지만, 왕국이 멸망하고 긴급히 탈출하는 장면에서도 캐릭터들이 크게 절망하거나 걱정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등 스토리 내에서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메인 스토리와는 반대로 캐릭터와 1:1로 진행되는 인연 스토리 완성도는 높은 편이다. 캐릭터성에 대한 조명도 뛰어나지만, 유저 선택지에 따라 스토리 분기가 바뀌는 등 연애 시뮬레이션을 축소·이식한 모양새를 띄고 있다. 일반적인 서브컬쳐 게임에서 유저 선택지에 큰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에버소울'이 지닌 막강한 매력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게임 캐릭터와 주고받는 메신저는 서브컬쳐 게임에서 새로운 시도는 아니지만, 유저가 캐릭터성을 더 잘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단독으로는 큰 의미 없는 콘텐츠일 수 있으나 인연 스토리에 토핑으로 얹히며 캐릭터 설정을 유저가 더 잘 체험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인연 스토리 완성도가 높은 편이기에 오히려 메인 스토리 완성도가 아쉬워지기도 한다. 향후 추가될 메인 스토리가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는 알 수 없으나, 인연 스토리 만큼의 완성도를 확보한다면 서브컬쳐 게임으로서 충분한 경쟁력을 지닐 수 있을 전망이다.
전투에서 유저가 집중 해야 할 부분은 전투 자체보다 전투 준비 부분이다. 캐릭터 간 궁합을 따져가며 육성한 뒤 맞는 진형을 설정하는 등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적지 않지만, 정작 전투에 돌입하면 스킬 발동 타이밍을 결정하는 것 외에 유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한 번 공을 들여 준비해 두면 전투에 오랜 시간을 쓸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복잡한 조작은 없어도 전투를 지켜보는 재미는 있다. 처음 구상한 대로 전투가 진행되는 모습을 볼 때 기분은 스포츠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내가 육성한 선수들이 얼마나 경기를 잘 풀어나가는지 지켜볼 때와 비슷하며, 화려한 애니메이션 컷신을 보는 재미도 꽤 쏠쏠했다.
전투는 메인 스토리 콘텐츠인 전선과 도전 및 재화 획득 콘텐츠인 모험으로 나뉜다.
전선 클리어율이 높을수록 메인 스토리가 진행되며, 동시에 시간에 따라 자동으로 획득할 수 있는 전리품 획득량도 늘어난다. 최초 클리어시 다양한 보상을 제공하는 만큼 최우선 목표는 전선 클리어율을 높이는 것이다.
모험 콘텐츠로는 매일 바뀌는 특별한 버프·디버프 하에서 적을 물리치는 게이트, 보유 중인 캐릭터 레벨에 따라 난도와 보상이 변하는 조각난 차원의 미궁, 직접 던전을 탐험하며 미션을 해결하는 기억의 회랑이 있다. 각각 하루·이틀·일주일 간격으로 초기화되는 명실상부 '에버소울'의 핵심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게이트와 전선 돌파율 및 타입별 캐릭터 수집률에 따라 보상을 제공하는데, 서버 내 유저 한 명이 조건을 달성하면 나머지 유저 전원에게 보상을 지급하는 방식을 통해 게임을 시작하지 얼마 안 된 유저라도 빠르게 재화를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적 구성에 따라서는 스테이지에 맞춰 잠시 조합을 바꿔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일반적인 RPG에서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한동안 같은 스테이지에 정체된 상태로 새 캐릭터를 육성해야 하지만, '에버소울'은 레벨 동기화 기능을 통해 육성하지 않은 캐릭터도 즉시 전력으로 활용할 수 있다.
레벨 동기화는 보유한 캐릭터 중 가장 레벨이 높은 캐릭터 다섯을 뽑고, 다섯 캐릭터 중 레벨이 가장 낮은 캐릭터를 기준으로 다른 캐릭터 레벨을 올려주는 기능이다. 동기화시킬 수 있는 캐릭터는 기본적으로 하나이며, 재화를 통해 늘릴 수 있다.
아예 주력 캐릭터를 교체해야 할 때는 캐릭터 초기화를 통해 캐릭터 육성에 사용한 재화를 반환 받을 수도 있다. 초기화에는 유료 재화를 소량 요구하며, 월정액 서비스인 '마농팩'에 가입하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여러모로 캐릭터 육성 편의성이 꽤 높은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마농팩에는 무료 초기화 외에 전리품 누적 시간 확장, 전리품 빠른 사냥 무료 및 최대 횟수 증가, 전투 스킵 기능, 다수의 유료 재화가 포함된다. 이중 전투 스킵 기능이 특기할만한데, 적과 전투력 차이가 30% 이상이라 거의 반드시 유저가 승리할 수 있는 경우 무의미한 전투를 생략하고 보상만 획득할 수 있는 기능이다.
편의 기능을 활용하기 위해 구독형 서비스에 꾸준히 가입해야 한다는 점은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전투 스킵을 제외하면 대부분 게임을 조금 더 오래 방치할 수 있게 해주거나 유료 재화를 소비해야 하는 기능을 무료로 바꿔주는 기능인데, 해당 기능 없이도 게임 플레이에 큰 지장이 없을뿐더러 유료 서비스 이용 금액을 선불하는 방식에 가까워 악성 과금 유도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캐릭터 획득에 필요한 허들이 상당히 낮은 게임이기도 하다. 최고 등급 캐릭터 획득에 필요한 뽑기는 30회, 픽업 캐릭터 확정 획득에 필요한 뽑기는 80회로 책정되어 있는데, 캐릭터 수집형 게임에서 캐릭터 획득 난도가 낮다는 점은 게임을 불문하고 매우 강력한 장점이다.
주기적으로 재화를 얻을 수 있는 전리품 습득 기능과 일종의 타이쿤 시스템인 영지는 '에버소울'의 방치형 콘텐츠를 대표한다. 전리품은 캐릭터 육성에 필요한 재화가 꾸준히 습득되는 만큼 주기적인 접속을 유도하며, 캐릭터 육성 문제로 플레이가 막혀도 며칠 뒤 자연적으로 돌파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준다.
영지는 사유지와 상업지구로 나뉘며, 사유지는 건물을 짓고 캐릭터를 아르바이트에 동원하는 등 재화 획득 허브 기능을 수행한다. 상업지구에서는 캐릭터를 만나 대화를 하거나 선물을 주고 데이트를 즐길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영지야 말로 방치와 교감이라는 '에버소울'을 상징하는 키워드를 응집해 둔 핵심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국산 서브컬쳐 게임 중 독보적인 자유도를 제공하는 커스텀 프로필 기능도 특기할만하다. 보유한 캐릭터 이미지와 각종 도형, 텍스트 박스 등을 자유롭게 사용해 프로필 이미지를 꾸밀 수 있는 시스템이다. 게임 출시 첫날부터 인터넷 밈이나 타 서브컬쳐 게임을 패러디한 프로필이 다수 등장해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는 등 유저 유입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하기도 했다.
커스텀 프로필은 단순한 자기표현을 넘어 서 유저가 자신과 비슷한 성향을 지닌 다른 유저와 만나기 쉽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서브컬쳐 게임 유저들은 게임 친구를 구하기 위해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임 프로필 스크린샷을 업로드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커스텀 프로필을 통해 유저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더욱 주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자유로운 만큼 종종 불쾌감을 유발하는 부적절한 프로필이 눈에 띄기도 했다. 운영진이 모든 프로필을 검토할 수는 없겠으나, 부적절한 프로필이 신고되면 즉각 재제하는 등 엄정한 대처가 필요해 보였다.
방치형 장르가 으레 그렇듯 '에버소울'도 호흡이 긴 게임이다. 각종 재화를 한 번에 다량 얻을 수는 없으나 꾸준히 획득 가능하며, 캐릭터 승급 등 육성에 드는 재화가 많기는 하나 꾸준히 획득할 수 있는 만큼 언젠가는 반드시 가능하다. 긴 시간 동안 플레이 해야 한다는 뜻이다.
초반에야 성장이 빠르고 새로 익혀야 하는 게임 플레이 요소도 많은 만큼 게임 템포가 빠르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일단 게임 플레이가 궤도에 오른 뒤에는 매일 짧은 시간만 접속해 안정적으로 꾸준히 플레이 할 수 있는 게임이 된다. 누군가에게 쫒기지 않고 느긋하게, 마치 분재를 가꾸듯이 플레이 할 수 있는 게임이라고 해야 할까.
한 게임에 집중하는 성향의 유저라면 콘텐츠를 빠르게 소비할 수 없다는 점이 답답할 수 있지만, 기존에 다른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에게는 플레이를 중단하지 않고 '에버소울'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강점이 될 수 있는 요소다. 반대로 서브컬쳐 게임 신작이 나오더라도 신작 플레이를 위해 '에버소울' 플레이를 중단할 필요가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러 요소를 종합해 봤을 때, '에버소울'은 분명 공들여 개발한 게임이 맞다. 각종 게임 요소는 물론 뛰어난 최적화와 유저 친화적인 과금 유도 등을 통해 게임을 여러 측면에서 꼼꼼히 개발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서브컬쳐 게임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해 보이는 점이 흠이다. 특색 없는 메인 스토리와 분위기에 맞지 않는 OST 선정 등 '게임 개발능력은 뛰어나나 서브컬쳐 이해도는 낮은 개발자들이 만든 게임'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요소가 산재해 있다.
'에버소울'이 오랜 시간 유저들에게 좋은 게임으로 남고 싶다면 가장 먼저 서브컬쳐 이해도를 높이고 메인 스토리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다행히 아쉬운 점이 있을 뿐 기반을 탄탄히 잘 개발한 게임인 만큼, 추후 업데이트와 개선을 통해 수작에서 명작으로 거듭날 가능성은 활짝 열려있는 상태다.
리뷰/프리뷰
정성 들인 서브컬쳐 수작, 에버소울
총 1054의
게시물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