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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긴장 백배 SRPG, 르모어: 인페스티드 킹덤

작성자 :	등록일 : 2023-06-07 오후 5:56:19

웹젠은 블랙앵커 스튜디오가 개발하고 자사가 유통 예정인 신작 '르모어: 인페스티드 킹덤(이하 르모어)' 플레이 테스트를 진행했다. 플랫폼은 PC(스팀)으로, 영문 및 한국어 자막이 공식 제공된다.

'르모어'는 과거 '비포 더 던'이라는 이름으로 개발되던 게임이다. 2021년 글로벌 인디게임 제작 경연대회에 출품해 금상을 수상하고 부산 인디게임 커넥트 페스티벌(BIC 페스티벌)에 출품해 좋은 반응을 얻는 등 성과를 거둔 바 있는 게임이기도 하다. 2023년 하반기 중 '앞서 해보기' 버전으로 글로벌 출시 예정이다.

'르모어'에서, 유저는 괴물들에 의해 멸망한 중세 유럽풍 국가 르모어의 생존자들을 이끌고 살아남아야 한다. 다른 생존자를 찾고, 물자를 찾고, 괴물을 물리치고, 생존자 각자가 믿는 바를 위해 나아가야 한다.

게임 진행은 선형적이다. 스테이지를 진행하고, 은신처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다음 스테이지에 도전하게 된다. 은신처에서는 캐릭터간 대화를 감상하며 스토리를 진행하거나 스테이지에서 수집한 각종 재료로 생존자들을 강화할 수 있다.

괴물들에게 멸망당한 세계에서 생존자들이 힘겹게 투쟁한다는 배경 설정답게 게임 스토리는 전반적으로 암울하고 어둡다. 생소한 세계관이지만 배경 묘사가 꽤 상세하기 때문에 게임 스토리를 이해하는 데에도 무리가 없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를 좋아하는 유저라면 쉽게 몰입할 수 있을 듯 했다.

테스트 버전 스토리에는 편력 기사 윌리엄, 민병대원 에드윈, 이방인 디어뮈드가 등장했다. 캐릭터마다 성격이 입체적이기 때문에 종종 등장하는 캐릭터 간 대화를 보는 맛이 있었다.

예컨대 리더인 윌리엄은 변종 괴물들에게 아내를 잃으며 다소 냉소적인 성격이 된 인물로, 마음속에는 아직 정의감과 선한 마음이 남아있는 모습을 보인다. 누군가가 구조 신호로 울린 종소리를 들으며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라고 비웃지만, 그러면서도 주저 없이 생존자를 구하러 갈 채비를 서두르는 식이다.

자칫 잘못 묘사하면 모순적이라는 평가를 들을만한 상황이지만, 블랙앵커 스튜디오는 이런 상황을 유저들이 납득할 수 있게 풀어냈다.

전투는 SRPG 식으로 진행된다. 전술 행동력으로 이동하고 무기 행동력으로 적을 공격한다. 무기 행동력은 장착한 무기와 사용 기술에 따라 다른 양이 소모되며, 전술 행동력은 이동 거리에 비례해 소모된다.

무기 공격 외에도 전술 행동력을 사용한 다양한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 디어뮈드는 전술 행동력을 대폭 소모해 무기 행동력을 충전할 수 있고, 윌리엄은 갈고리롤 적이나 아군을 끌어올 수 있다. 모든 캐릭터가 공통으로 데미지를 소량 주고 적을 밀쳐내는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데, 밀쳐내기를 적절히 활용해 아군에게 유리한 대열을 형성해야 했다. 전술 행동력을 이동에만 소모하면 안 되는 이유였다.

캐릭터가 성장하며 특성을 익히게 되는데, 이 경우 전투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다. 에드윈의 갈고리가 적을 코앞까지 끌고 오도록 강화되거나 윌리엄이 주변 아군 수에 따라 방어력이 증가하는 패시브 스킬을 얻기도 한다. 다만 캐릭터가 쓰러트린 적에 따라 올라가는 경험치가 다른 만큼 최대한 모든 캐릭터가 비슷한 비율로 적을 쓰러트리게 조절해 성장시켜 줘야 했다.

전투는 매 순간 까다로웠다. 유저는 언제나 괴물들과 비교해 열세에 몰려있다. 이동할 때는 최대한 적 시야를 피해 이동해야 하고, 어둠 속에서 적이 등장했을 때 대처할 행동력이 남도록 항상 계산해 가며 행동해야 했다.

전투에 돌입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적은 언제나 아군보다 수적으로 우세했고, 운 좋게 공격이 빗나가는 경우가 아니라면 적 공격은 언제나 치명적이다. 포위당하지 않게 주의하고 적이 우회할 경우를 상정해야 했다. 폭발성 변종 괴물이 아군에게 접근하기 전에 먼 거리에서 터뜨리거나 밀쳐내야 하는 상황도 까다로웠다.

무기 교체 기능은 힘든 싸움을 어떻게든 풀어나갈 수 있게 해주는 요소였다. 창으로 적을 공격한 뒤 턴을 종료하기 전 방패를 들어 적 역습에 대비하거나, 체력이 떨어진 캐릭터가 활을 들어 멀리서 아군을 보조하는 등 상황에 따라 무기를 변경해 줘야 했다.

그러나 장비를 많이 챙길수록 탐험에서 발견한 물건을 챙겨오지 못할 위험이 늘어나고, 반대로 예비 장비가 없는 상황에서 장비 내구도가 바닥나 위험에 빠지기도 하는 등 신경 써야 하는 요소가 두 배로 늘어났다는 느낌도 들었다. 변수를 철저히 통제해 가며 손에 땀을 쥐는 전투를 즐기는 유저라면 환영할만한 시스템으로 보였다.

플레이 방식에 따라 난도가 눈덩이 구르듯 높아진다는 점도 게임 특징 중 하나다. 아군이 떨어트린 장비를 챙기지 못한 채 스테이지를 클리어했다면 다음 전투는 더 고달파진다. 적에게 쫓기다가 식재료를 제대로 획득하지 못했다면 다음 전투에서는 제대로 회복을 취하지 못한 채 전투에 나갈 수밖에 없다. 각종 자재를 확보하지 못했다면 전투 중 무기가 파손돼 제대로 된 전투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정식 출시 후 관련 기능이 추가될 수도 있겠지만, 테스트 빌드 기준으로는 한 플레이에 여러 세이브 슬롯을 제공하거나 지나간 스테이지를 다시 플레이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지 않았다. 플레이 도중에 실수하더라도 돌이킬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뜻이다. 모든 행동이 낙장불입이라는 점은 전투를 한층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다.

그래픽과 사운드도 완성도가 높았다. 화려하고 정교한 3D 그래픽은 아니지만,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를 잘 살려낸 정교한 도트 그래픽과 완성도 높은 OST 및 사운드 효과는 플레이 중 항상 게임에 몰입할 수 있게 해줬다.

전투가 재미있는 만큼 반복 플레이 요소가 적은 점은 아쉽다. 플레이 테스트 기준에서는 이미 지나간 스테이지를 다시 플레이하는 등 반복 플레이 요소가 없었다. 맵 구조나 적 배치도 매번 동일하기 때문에 반복 플레이할 이유도 적었다.

스토리에도 충분히 강점이 있는 게임인 만큼, 테스트 버전에서 보여주지 않은 부분에 스토리 분기가 있거나 남은 게임 플레이에 영향을 미치는 선택지 등이 등장할 경우 해결될 수 있어 보였다.

'르모어'에는 아픈 과거가 있다. 3월 28일부터 4월 27일까지 글로벌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킥스타터에서 후원자를 모집한 바 있으나, 목표 모금액에 미치지 못해 후원이 무산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같은 모습이 되기까지 수차례에 걸쳐 게임을 다시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 플레이해 본 결과 '르모어'는 크라우드 펀딩에 실패할 정도로 저평가 받을 게임이 아니었다. 모금 당시에 게임 소개 트레일러만 있을 뿐 데모 버전이 제공되지 않은 점이 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모금 과정에서 현재와 유사한 데모 버전을 제공했다면 충분히 목표액을 달성할 수 있었을듯 했다.

블랙앵커 스튜디오는 '르모어' 테스트 버전을 통해 지난 수년간 쌓아온 개발 기간이 전혀 헛되지 않았음을, 그리고 모금에 실패한 이유는 인지도 부족이었을 뿐 결코 게임성이 없어서가 아님을 증명해냈다. 이제 남은 건 이 게임이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지 기대하며 출시일을 기다리는 일뿐이다.

겜툰 박현규 기자 news@gamto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