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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추위와 굶주림 보다 사람이 무섭다, 프로스트펑크 2

작성자 :	등록일 : 2024-09-19 오후 10:37:24

11비트 스튜디오는 자사가 개발한 생존 경영 게임 '프로스트펑크 2'를 9월 21일 글로벌 정식 유통할 예정이다. 플랫폼은 윈도우·macOS PC(스팀, 에픽게임즈 스토어)이며, 2025년 중 콘솔 버전도 출시될 예정이다. 한국어 자막을 정식 지원하며, 국내 심의기관으로부터 15세 이용가 등급을 부여받았다. 디럭스 에디션을 구매할 경우 출시일로부터 72시간 먼저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어드밴스드 액세스가 적용된다.

'프로스트펑크 2'는 2018년 4월 24일 출시된 '프로스트펑크' 후속작이다. 지구 전체가 빙하기로 인해 멸망한 뒤 소수의 생존자들이 발전탑에 의존해 도시를 재건해 나가는 내용으로, 후속작인 '프로스트펑크 2'는 전작에서 약 30년가량이 지난 뒤를 배경으로 한다.

'프로스트펑크 2'에서, 유저는 전작 '프로스트펑크' 메인 시나리오인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세워진 도시 뉴 런던을 이끌던 '대장'의 뒤를 이어 도시를 이끄는 위원장 역할을 맡게 된다. 인구는 포화상태에 다다르고 자원 매장지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으며, 설상가상으로 또다시 화이트아웃(대폭풍)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도시를 생존시키는 건 이제 유저 손에 달렸다.

전작 엔딩에서 게임이 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공식 설정상 뉴 런던은 질서의 길 방향으로 선을 넘은 적 있으나, '프로스트펑크 2'에서는 뉴 런던이 질서의 길을 걸었는지 혹은 신앙의 길을 걸었는지를 유저가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전작 마지막 시나리오인 '가장자리에서' 공식 엔딩에 따르면 뉴 런던은 11번 전초기지와 인근 마을들을 통합한 거대한 보호령을 구성했으나, '프로스트펑크 2' 시점에서 전초기지와 인근 마을들은 뉴 런던과 접점이 없는 상태로 등장한다.

세계관에 개변이 이뤄진 만큼 게임을 이해하기 위해 전작을 플레이해 볼 필요는 없다. 다만 게임 플레이 중 등장하는 전작 요소들을 이해할 수 있다면 게임이 조금 더 재밌어지긴 한다. 예컨대 영구 동토를 탐사하다 보면 나오는 지역 중 일부는 전작에서 등장한 바 있는 장소들이고, 직접적인 언급은 없더라도 전작을 의식하게 만드는 문장이 종종 등장한다.

이미 전작에서 화이트아웃을 이겨낼 수 있도록 건설된 도시인 만큼 뉴 런던이 당장 몰락할 위기에 처해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중앙난방에 사용되는 발전기 연료로 쓰일 석탄은 바닥을 드러냈다. 본격적인 게임 스토리는 뉴 런던 인근에서 발견한 석유를 새로운 동력원으로 활용하기로 결정하며 시작된다.

초인이었던 전작 주인공 '감독'은 중요한 결정을 자기 마음대로 내릴 수 있었지만, 본작 주인공 '위원장'은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여러 시민대표가 모인 위원회를 통해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이 위원회는 발전기에 온전히 석유만 사용할지, 석탄과 석유를 함께 사용할지를 결정하는 순간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1막 기준으로 위원회에는 온건파인 영구동토인과 뉴 런던인, 그리고 서막에서 내린 결정에 따라 급진파인 충성파(질서의 길)와 신앙수호자(신앙의 길) 중 하나가 참여한다. 이후 유저 선택에 따라 온건파에서 새로운 급진파가 파생되는 경우가 있는데, 예컨대 영구동토인에서 환경에 대한 적응을 강요하는 급진파인 진화주의자나 종교적 색채가 결합한 순례자가 파생되는 식이다.

각 파벌은 각자 추구하는 이상이 있고, 도시 정책이나 운영 기조가 자신들의 이상과 얼마나 잘 맞느냐에 따라 위원장을 지지하거나 비판한다. 상술한 발전기 운용 방침의 경우, 도시에서 살아오고 환경을 개척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뉴 런던인과 충성파·신앙수호자들은 뉴 런던을 핵심 도시로 성장시키기 위해서 석탄을 버리고 완전히 석유만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영구동토 개척자들의 후손이자 환경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온 영구동토인들은 외부를 개척하고 여러 개척기지를 건설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위해 석유에만 집중하지 말고 석탄과 석유를 함께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파벌마다 요구하는 바가 다르고 심지어 각 파벌이 생각하는 이상향이 서로 충돌하는 만큼, 특정 파벌의 지지도가 올라갈수록 다른 파벌 지지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대신 특정 파벌 지지도가 높아질 경우 해당 파벌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다. 예컨대, 종교적인 이유로 영구동토를 떠도는 순례자들은 영구동토를 탐험하는 데 있어 남다른 노하우를 갖추고 있으며, 따라서 순례자파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면 순례자 파벌의 도움을 받아 탐험 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다.

위원장과 관계가 극단적으로 치달은 파벌은 도시 내에서 소요 사태를 일으키거나, 위원장이 상정한 법안을 반대한다. 유저는 이를 위해 각 파벌을 설득해야 한다. 특정 파벌에 자금을 지원해 주거나, 다음 법안에 해당 파벌이 원하는 법안을 상정하거나, 반대로 그 파벌이 싫어하는 법안을 파기하는 식이다. 때로는 특정 파벌이 요구하는 건물을 지어야 할 때도 있다.

이는 여러 파벌의 말을 들어줄수록 도시 발전이 중구난방으로 되어버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쪽에서는 매연을 내뿜는 설비를 사용해 자재 생산량을 늘리고, 다른 한 쪽에서는 매연을 줄이는 대신 생산량도 낮추는 설비를 건설하길 바라는 식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발전한 도시는 결국 서서히 몰락하게 될 뿐이기 때문에, 마냥 모든 파벌을 사이좋게 만드는 데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파벌을 만족시키고 도시를 생존시키는 게 시스템적으로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니다. 정치 놀음에 시달리며 도시가 서서히 몰락하게 놔둘지, 특정 파벌을 강압적으로 짓밟으며 도시를 일치단결시켜 발전시킬지, 혹은 초인적인 리더쉽을 발휘해 모든 파벌을 화합시키고 도시도 발전시킬지는 유저에게 달렸다.

인구가 많아 봤자 수백 명이었던 전작과 달리 못해도 수천 명으로 늘어난 만큼 전작처럼 실시간으로 건물 하나하나를 세세히 조작하는 마이크로 컨트롤은 불가능하다. 건설 역시 각종 건물과 설비를 일일히 짓는 대신 눈밭을 '쇄빙'해서 공간을 창출하고 해당 공간을 어떻게 사용할지 구역을 지정해 주면 알아서 건설이 진행되는 방식이다.

건물은 일종의 애드온처럼 작동한다. 예컨대 거주 구역에 병원을 건설하면 해당 거주 구역 내에 질병 발병률이 감소하고, 감시탑을 건설하면 범죄율이 감소하는 식이다. 구역마다 최대 2개만 건설할 수 있다.

구역 배치 노하우 자체는 전작과 동일하다. 거주 구역은 거주 구역끼리 밀집해 있을수록 좋고, 식량 생산 구역과 거주 구역은 따뜻할수록 좋다. 산업 구역이나 채굴 구역은 거주 구역과 맞닿아 있을 경우 질병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

아무래도 게임 핵심 시스템이 법안과 파벌 쪽으로 넘어간 만큼 인프라 구축은 전작보다 많이 쉬워진 편이다. 다만 극단적인 정책을 남발하다가 파면되는 게 아닌 이상 거의 모든 게임 오버가 '정치로 인해 인프라 구축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만큼, 결코 경시할 만한 요소는 아니다.

시나리오는 전작처럼 독립된 시나리오가 아니라 서막부터 엔딩인 4막까지 거대한 스토리를 이어간다. 서막에서는 뉴 런던이 질서의 길과 신앙의 길 중 어느 쪽을 걸었는지를 결정하게 되고, 1막부터 4막까지는 각 막의 테마에 맞춘 시련과 맞서야 한다.

전작처럼 여러 시나리오가 제공되는 게 아니라 단 하나만 제공되는 만큼 볼륨이 줄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유저 선택에 따라 매우 다양한 분기가 발생하고 등장하는 파벌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한 시나리오를 다시 해도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하게 될 수 있다.

시나리오 완성도 자체는 높은 편이지만, 시나리오가 길어진 만큼 피로도도 높다는 점은 유저에 따라 단점이 될 수도 있다. 같은 도시를 시나리오 내내 꾸려나가는 만큼 실수를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도 호불호가 갈릴만한 부분이다. 다소 극단적인 예시지만, 최고 난도로 게임을 진행하는 유저라면 2막에서 한 실수 때문에 4막 진행 중 2막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게임 난도는 시민, 사관, 위원장, 대장으로 나뉜다. 시민이 가장 쉬운 난도이고 대장이 가장 어려운 난도다. 어려운 난도로 갈수록 자원 소모율, 탐험 실패율, 사회 갈등 상승률 등이 상승한다. 가장 쉬운 시민 난도는 초심자라도 어찌저찌 엔딩까지는 볼 수 있을 수준이지만, 대장 난도는 초반에 일으킨 실수 하나가 후반에 발목을 잡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하는 등 심혈을 기울여서 플레이해야 한다.

유저 성향에 따라 체감 난도가 달라진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게임을 그저 게임으로만 여기는가, 혹은 본인의 도덕과 상식을 게임에 투영하는가에 따라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인권을 무시하고 극단적인 정책을 수립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유저라면 그만큼 엔딩을 보기 쉽다. 반대파를 숙청하고, 범죄자를 인체 실험에 동원하고, 시민들을 임의로 짝지어 원치 않는 결혼을 시키고, 출산을 의무화하고, 비밀경찰을 동원해 반대 세력을 찍어 누르면 모두가 살아남게 될 것이다.

그렇지 못한 유저라면 모든 분파의 이견을 조율하고, 생존을 위해 필요한 법안만을 투표에 상정하며, 때로는 플레이에 방해되더라도 시민들이 요구하는 법안을 상정하고, 모든 분파를 하나로 뭉쳐야 한다. 가장 쉬운 난도에서도 가시밭길에 가까운 플레이지만, 클리어 뒤 느끼는 보람과 개운함은 다를 것이다.

튜토리얼이 친절하지 않은 편이다. 새로운 용어나 기능이 출연할 때마다 상세한 튜토리얼이 제공되는 대신 글로 작성된 설명서가 출력되는데, 글이 꽤 긴 편인 데다가 직접 해보기 전 까지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있기 때문에 진입 장벽이 높다. 게임을 시작하고 첫 몇 시간 정도는 새로운 기능과 각종 사고에 머리를 부딪혀가며 하나씩 알아보는 시간을 거쳐야 한다.

최적화 상태가 뛰어나지도 않다. 아마 자잘한 애니메이션이 많아서 생기는 문제로 보이는데, 시민 수가 증가하고 가동되는 설비가 많아질수록 끊김 현상이나 프레임레이트 저하가 자주 발생한다. 게임을 장시간 플레이할 경우 로딩 속도가 느려지거나 게임이 강제 종료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메모리 누수 문제도 있는 듯하다.

BGM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아주 훌륭하다. 현악기 위주로 편성됐던 전작 BGM과 달리 풀 오케스트라 편성 곡이 많지만, 게임 상황과 시나리오 전개에 따라 주력을 이루는 악기를 변경하며 유저에게 다양한 감정을 선사한다. 전작 BGM이 대재앙에 맞서는 인간의 무력함과 공포를 상징했다면, 이번 BGM은 여기에 더해 인간들 사이에 피어나는 긴장과 갈등을 더 강조하는 측면이 있다.

아트도 마찬가지다. 냉혹한 설원과 찌르는듯한 추위를 시각적으로 적절하게 표현했으며, 긴장이 고조될수록 도시를 휘감는 열선과 조명이 점차 붉어지며 유저를 압박한다. 동상 흉터와 서리가 강조된 전작과 달리 그을음과 상처가 더욱 강조된 인물 포트레이트 역시 게임에 몰입감을 더한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프로스트펑크 2' 역시 첫눈에 반할만한 게임은 아니다. 진입장벽은 높고, 설명은 불친절하다. 처음 몇 시간 동안 게임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그 진면목을 들어다볼 수 있는 게임이다. 그러나 일단 게임에 적응한다면 이후 몇백 시간은 가뿐히 '프로스트펑크 2'에만 매진하게 될 수 있다.

전작을 재미있게 플레이 한 유저라면, 혹은 '프로스트펑크 2' 특유의 아트워크나 분위기에 매료된 유저라면, 구매를 주저할 필요가 없다. 추위와 허기, 그리고 그보다 무서운 정치적 갈등과 마주하라.

겜툰 박현규 기자 news@gamto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