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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신업 도둑의 길, 너무 오래 숨었다가 낡아버린 수작

작성자 :	등록일 : 2022-10-25 오후 9:29:34

디지털터치는 어콰이어(ACQUIRE)가 개발한 잠입 액션 게임 '신업 -도둑의 길-(이하 신업)' 을 10월 13일 국내 정식 출시했다. 2006년 PS2로 출시한 '神業(카미와자, 신업)' 을 리마스터 한 작품으로, 플레이스테이션 4와 닌텐도 스위치로 이식됐다.

원작 출시 당시에는 한글화가 이뤄지지 않아 국내 인지도가 크게 떨어졌으나, '입체닌자활극 천주'와 '사무라이의 길' 시리즈로 유명한 어콰이어인 만큼 콘솔 게임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종종 숨은 명작으로 회자되던 작품이기도 하다.

'신업'에서, 유저는 도둑 에비조가 되어 의적 활동을 이어 나가게 된다. 에비조는 젊은 시절 의적단에 가입해 활동하려 했으나 그 의적단이 강도단으로 돌변하는 걸 보고 질겁해 도주한 인물로, 강도단에게 한 집안이 몰살당할 때 구출한 아이인 스즈나를 딸 삼아 키우는 남자다.

게임 스토리는 스즈나가 걸린 병을 치료할 약을 구하기 위해 에비조가 다시 의적 활동에 나선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옛 인연들과 도둑 사회, 마을 사람들과 관계 같은 이야기들이 얽힌다.

잠입 액션 게임이지만, 일반적인 잠입 액션과는 조금 다르다. 단순한 좀도둑이 아니라 '의적'을 지향하는 만큼 사람을 죽이거나 닥치는 대로 훔치지 않는다. 적을 공격할 수 없는 잠입 게임은 답답함을 안겨주기 마련이지만, 게임 컨셉 상 주인공에 몰입하기 좋은 '신업'에서는 답답하다기보다는 스릴을 더해주는 요소로 작용한다.

도둑질은 간단하다. 공격과 훔치기가 모두 한 버튼이며, 다양한 은신 기술 역시 버튼 하나만 누르면 자동으로 발동된다. 간편한 대신 섬세한 컨트롤이 힘들다는 문제가 있었다. 시점 조작이 그리 편한 게임이 아니라 빠르게 이동해야 할 때 벽에 붙어버리는 등 사소한 조작 문제가 왕왕 발생했다.

훔칠 수 있는 물건은 하이라이트로 표시되며, 물건 가치에 따라 달라지는 체력 게이지를 모두 깎아내야 장물 보따리에 넣을 수 있다. 훔치기 모션이 별도로 없어서 물건에 공격을 하다보면 훔쳐지는 식인데, 화로나 빗물받이에 주먹질을 하는 에비조를 보다보면 우습기도 하다.

도둑질에도 여러 테크닉이 있다. 대표적인 게 저스트 스텔스다. NPC에게 들킨 직후 빠르게 은신해서 몇초 동안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기능인데, 이 동안 NPC 정면에서 대놓고 훔치기 기능을 써 소지품을 훔치거나 주변 물건을 단숨에 훔칠 수 있다.

게임 시스템상 일부러 적에게 들킨 뒤 저스트 스텔스 상태에 돌입해 물건을 마구 훔치는 행위가 권장된다. 잠입 액션이 순식간에 액션 활극이 되는 순간인데, 빠르게 콤보를 올리는 재미가 생각보다 쏠쏠했다.

이외에도 물건을 많이 훔칠수록 보따리가 커져서 적에게 잘 들키거나 움직임이 굼떠지는 페널티가 있는데, 잠시 보따리를 내려놓고 적을 피하거나 보따리를 걷어차 이목을 끄는 테크닉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했다.

보따리에 들어갈 수 있는 물건에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도둑질 중간에 다시 보따리를 풀고 물건을 정리할 수도 없다. 물건에 따라 가치가 천차만별인 만큼 물건 선별을 잘해야 한다.

맵 구조를 거의 다 외우고 다니는 다회차 플레이 유저가 아니라면 일단 맵을 한 바퀴 둘러본 뒤 물건을 선별하는 게 좋다. 게임을 생각보다 전략적으로 만들어주는 요소였다.

스즈나를 치료할 약을 구하기 위해 다시 의적이 된 만큼 게임 핵심 목표는 스즈나를 낫게 하는 일이다. 스즈나의 병세는 실시간으로 악화하며, 의적 활동 중 획득한 약이나 음식을 전달해 호전시킬 수 있다.

게임 엔딩은 '사무라이의 길' 시리즈처럼 주인공 평판이나 도둑질 성과 등에 따라 달라지는 멀티 엔딩이지만,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스즈나인 만큼 스즈나의 병세 역시 엔딩에 큰 영향을 미친다.

병세는 집에 들어왔을 때 스즈나 상태로 알 수 있다. 서 있다면 많이 호전되었다는 뜻이며 앉아있다면 보통, 누워 있다면 위험한 상황이다. 도둑질에만 매진한다면 십중팔구 스즈나가 드러눕는 걸 볼 수 있으며, 꾸준히 약과 음식을 조달해 돌봐줘야 한다.

주민 평판도 중요한 요소다. 주로 의적 활동을 해서 올릴 수 있으며, 평판이 오를수록 마을 주민들이 주인공을 옹호해주거나 주인공 집 앞에 이런저런 물건을 놓아두는 등 소소한 보상이 주어진다.

평판 관리에생각보다 신경써야 할 점이 많다. 특히 물건 출처가 어디인지가 중요한데, 예컨대 마을 물건을 훔쳐 다시 마을에 기부하면 오히려 평판이 떨어지는 식이다.

보따리가 시민들에게 의심을 사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너무 큰 보따리를 들고 다니면 그저 거리를 걷기만 해도 시민들이 경계하게 되며, 이외에 지붕 위에 올라가 있거나 복면을 쓰고 있어도 경계 대상이 된다. 경계 대상이 되면 수배지에 그려진 몽타주가 점점 주인공과 닮아가며, 거리에 돌아다니는 경비가 많아지는 등 패널티가 생긴다.

수배지에 그려진 몽타주가 주인공을 똑같이 묘사하게 되면 체포 당해 고초를 겪게 되는 만큼 평판을 올리는 일 만큼이나 경계를 사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도둑 사회의 핵심인 도둑탕은 의적 활동과는 반대되는 곳이지만, 주인공이 어쩔 수 없이 몸담는 곳이다. 도둑질을 통해 번 돈을 도둑탕에 상납해 추가 보상을 얻거나 각종 장비를 업그레이드 할 수 있고, 딸을 치료할 수 있는 약도 구매할 수 있다.

특히 중요한 부분이 기술 습득이다. 스토리상 첫 도둑질 작업 중 도주한 주인공인 만큼 기술적인 면에서는 초짜 도둑과 다를 바 없고, 도둑탕에 있는 달인에게 돈을 내고 기술을 배워야 한다.

게임 진행을 편하게 하려면 장물을 도둑탕에서 처리해야 하고, 컨셉을 위해서라면 마을에 기부해야 한다. 선택은 유저의 몫이지만, 의적질과 도적질 사이의 균형을 잘 잡는 게 좋다.

'카미와자'는 수작 잠입 액션 게임이었으며, 다른 게임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게임성과 컨셉으로 마니아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알려져 있던 작품이다. PS2 말기에 출시된데다가 한국에 정식 발매되지 않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울 정도다.

그러나 출시된 시기가 시기인 만큼 오늘날 리마스터 된 '신업 -도둑의 길-'은 많이 낡았다는 느낌이 든다. 개선 없이 업스케일링만 된 그래픽은 어딘가 모르게 기괴한 구석이 있었고, 희귀한 물건을 훔치기 위해 수십 초 동안 같은 물건을 두드리며 버튼 하나를 연타하는 건 생각보다 재미있지 않았다. 플레이 타임도 그리 길지 않다.

게임에서 그래픽 완성도를 중시하거나 고전 게임이기에 용납될 수 있는 낡은 시스템을 꺼리는 유저라면 굳이 이제 와서 '신업 -도둑의 길-'을 구매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잠입 액션 장르 마니아이거나 구세대 그래픽도 용인할 수 있는 유저라면 '신업'을 통해 2006년 당시 유저들이 느낀 즐거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겜툰 박현규 기자 news@gamto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