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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추억의 게임] 퀘이크3~ 아레나(Quake3 Arena)
작성자 : 등록일 : 2014-03-27 오후 10:53:08


하나의 게임이 등장하고 난 뒤, 그 게임은 시장에서 가혹하리만한 ‘심판’을 받는다. 그리고 그 심판은 마치 법정에서 ‘유죄냐, 무죄냐’가 갈리듯, 명확하게 갈린다. 유죄는 재미가 없는 게임이 받는 심판이고, 무죄는 재미가 있는 게임이 받을 수 있는 귀책사유, 이른바 ‘까임방지권’이다.

만약 시장에서 무죄 선고를 받지 못하는 게임에 내려지는 형벌은 그야말로 가차 없다. 바로 사형 선고와 다름 없는 ‘무관심’과 ‘외면’이다. 게임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가상 세계에 대한 종말을 뜻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반대의 경우는 수많은 것들을 얻는다. 부와 명예는 물론,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부여받는다. 계속해서 자신들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제공할 수 있도록 허락받는다는 것은 ‘무죄선고’를 받은 게임들과 크리에이티브 집단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그렇게 시장에서 유저들에게 무죄 선고를 받은 게임들은 그 공적을 인정받아 꽤나 오랜 기간 동안 유저들에게 인기를 얻게 되는데, 시장에서의 재판이 끝난 뒤 평균 이상의 인기를 얻고 많은 배심원들의 호감을 산 게임들은 그 시대의 아이콘이 되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 새로움을 원하는 시대의 물음에 응답을 하는 경우로, 그렇게 되면 그 게임은 자연스럽게 흐름을 주도하게 된다.

시대의 아이콘이 되는 게임은 게임 역사에 손에 꼽을 만한 숫자로, 그만큼 해당 장르에 많은 영향을 끼침은 물론이고 그 시대의 흐름을 이끄는 트렌디세터가 되는 만큼 많은 것을 부여받고 또 누리게 된다. 그 게임을 만든 이들, 투자한 이들에게 많은 부와 명예를 안긴다.

하지만 부담도 있으니. 게임뿐만 아니라 그 게임을 만든 사람들 또한 게임 시장에서 막중한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위치가 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 대단한 영광을 이룬 이들이 만들어 내는 ‘넥스트 제네레이션’을 주목하고, 또 기대한다. 여기에 더해서 많은 게임 개발자들이 그에 귀감을 삼으려 한다. 업계에 종사하는 이들로서, 프로로서 나름대로의 책임감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업계가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많은 게임들이 나오는 요즘, 그러나 많은 개발자들에게 귀감이 되고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가는 ‘국산 게임’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영광을 자신들이 갱신한 ‘FPS역사의 산 증인’인 ID소프트웨어웨어가 주는 교훈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퀘이크3~ 아레나(Quake3 Arena, 1999)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ID소프트웨어의 창립 멤버였던 탐 홀과 존 로메로는 이온스톰을 설립한 뒤, 1998년 말 씨프~ 죽음의 그림자를 발표했다. 게임명 그대로 잠입 FPS의 진수를 보여 준 이 게임은 훗날 이온스톰에서 개발한 데이어드엑스와 함께 게임스파이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훌륭한 TOP 50'에도 당당히 뽑히기도 한다. 그 만큼 퀘이크 엔진의 라이벌인 언리얼과 하프라이프의 등장은 영화와 같은 블록버스터 FPS들의 전성시대를 활짝 열어젖히는 일이 되었다.



이런 대작들의 등장 속에 레드스톰의 레인보우 식스와 이온스톰의 씨프 등은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한 독특한 연출과 스파이, 암살자를 소재로 한 연출로 유저들에게 사랑을 받았으며, 1998년 훌륭했던 FPS의 한 해를 마감시킨다.

그러나 98년은 FPS의 지존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던 ID소프트웨어의 입지를 흔든 한 해이기도 했다. 많은 경쟁작들과 ‘퀘이크 킬러’로 서서히 시동을 건 게임들이 등장하여 지존의 자리를 위협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ID소프트웨어는 98년 새로운 게임을 만들 생각을 했지만, 많은 게임들의 발매를 본 존 카맥이 일부러 발표 시기를 늦추기도 했었다.

‘둠~퀘이크1, 2’로 이어지는 영광의 90년대 후반을 뒤로한 채, ID소프트웨어는 자신들에게 도전해 오는 많은 FPS게임들을 접하며 다음을 준비한다. 수많은 FPS명작들이 등장하는 와중에 유저들은 ID소프트웨어에게 ‘다음에는 어떤 것을 보여줄지’에 대해 귀추를 주목시키고 있었다. 그렇게 99년을 맞이하게 된다.



98년부터 99년 말까지, 당시 FPS게임 시장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얻은 게임은 밀리터리 FPS였다. 1차 세계대전, 2차 대전을 그린 ‘역사형 FPS’가 사람들에게 현실성 있게 다가섰고, 우주로 나가 알 수 없는 괴물들에게 레이저 건을 난사하는 등 잔인함과 폭력성, 선정성에 무료함을 느낀 유저들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리고 실제 전쟁의 한 복판에 있는 것 같은 리얼리티를 추구한 게임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언리얼이나 하프라이프는 밀리터리 FPS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존 공상과학 FPS들과 자리를 나란히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언리얼이나 하프라이프 역시 현실과 비슷한 디자인의 무기들과 전쟁 도구들이 등장했기 때문에 이런 유저들의 대세의 흐름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1991년 ID소프트웨어가 카타콤 3D를 발표한 이후 나온 FPS게임들이라고는 줄곧 형이상학적인 괴물과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기들을 가지고 알 수 없는 공간에서 싸우는 것들뿐이었다. 공포 영화의 그것이랄까. 인간이 상식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을 FPS게임들은 추구하고 있었다(물론 그 시작은 그것으로 인기를 끈 둠과 존 카맥이었지만).



다른 게임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울티마 온라인이 RPG로써 많은 인기를 끌던 시절, 사람들은 판타지 세계에 심취했고 판타지 소설을 읽었다. 하지만 그 역시 영화의 한 장면일지언정 플레이어의 복사판이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들에 대한 몰입감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 나오는 판타지 게임들이야 그래픽도 좋고 구현도가 워낙 좋기 때문에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라고 해도 몰입도라는 것에 큰 구애를 받지 않지만, 당시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캐릭터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 건지 모를 만한 수준이었다.

이런 와중에 밀러터리 FPS는 유저들의 새로운 기대감을 증폭시켰고, 이후 나오는 FPS들의 다양화를 꾀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레인보우식스는 ‘잠입’과 'FPS의 격렬한 총격전‘이라는 두 가지 재미를 함께 담고 있었으며 팀으로 움직이는 설정 탓에 많은 멀티플레이어 마니아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국내 PC방의 활성화 요인 중 하나였던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이런 분위기에 대해 ‘기술자’인 존 카맥은 “기술로써 거듭날 수 있었다”라고 회고한다. 즉 영화같은 연출이나 현실성, 리얼리티 등은 모두 다 곁다리일 뿐, 결국 그것들을 구동시킬 수 있는 훌륭한 기술이 있다면 그와 같은 현실적인 연출 등은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존 로메로와의 결별 이후 게임 디자이너들과 등을 돌려버린 존 카맥, ‘뼛속까지 기술자’ 존 카맥이었기에 이런 이야기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갈 것이다.

이렇게 99년까지 나온 FPS들이 인기를 끌던 무렵,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ID소프트웨어가 개발, 액티비전(Activision)이 유통을 맡은, 시리즈 최고의 흥행작 퀘이크3 아레나(Quake 3~ Arena)가 등장을 하게 된다.



ID소프트웨어에 홀로 남은 천재 존 카맥은 퀘이크3의 개발에 앞서 ‘당연히’엔진의 개량에 들어갔다. 카맥 역시 하프라이프와 언리얼의 그래픽에 대한 세심함을 보고 느낀 바가 많았다. 물론 후속으로 나온 엔진의 뛰어남이 그를 자극시킨 것은 아니지만, 카맥은 엔진을 개량하기에 앞서 그래픽 기술에 대한 고찰부터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존 카맥은 엔진의 개량에 앞서 그래픽 엔진의 새로운 도입을 위해 TRINITY라는 엔진을 만들게 된다. 이 그래픽 엔진은 향후 둠3에 적용이 될 정도로 엄청난 그래픽 효과를 불러 일으켰으나, 당초 기획을 했떤 퀘이크3의 방향과 컴퓨터 사양 등의 문제로 인해 채택되지는 못했다. 몇 년 후의 그래픽 기술로 최고의 사양을 뽑아낼 수 있는 엔진을 이때부터 만들어 내 두었던 것이다.

아무튼 TRINITY엔진을 잠시 접어두고 난 ID소프트웨어는 퀘이크3의 콘셉트에 대한 의논에 들어간다. 사실 퀘이크3의 초기 콘셉트는 2의 스토리라인과 게임 방식을 고수하면서 새로운 그래픽 엔진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존 카맥도 새로운 그래픽 엔진에 대한 고찰을 했으며, 무엇보다 퀘이크의 검증된 게임성을 그대로 계승하여 후속작의 느낌을 준다는 것에 역점을 둔 작업이었다.

그러나 그래픽 엔진의 개발 후 사정이 달라졌다. 순식간에 올라가 버린 기술력 덕분에 게임 제작의 접근을 처음부터 다시 기획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콘셉트를 다시 잡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고뇌가 퀘이크 시리즈 사상 최고의 흥행을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 당시 ID소프트웨어의 수뇌부들은 모두 카맥의 영향을 받고, 카맥에 매료되어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나 간판인 퀘이크의 후속작을 만드는데 그 게임의 엔진을 만든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은 거의 절대적인 수준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퀘이크3의 콘셉트를 잡으면서 이들은 모두 ‘게임 개발 아티스트’의 입장이 되어 있었다.

때문에 퀘이크3를 2의 기본에서 개량한 형태로 하자는 기본 콘셉트는 이들에게 성에 차지 않는 주문이었다. 퀘이크2의 재작업에 불과하는 알이었기 때문이었다. 퀘이크3의 개발 속도는 점점 더 늦춰질 수밖에 없었고, 카맥을 제외한(그래픽 엔진을 만드는 데 몰두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제작진들은 열정적이지 못한 개발 태도를 보였다.

결국 개발진은 퀘이크3의 새로운 개발 콘셉트를 잡기에 이른다. 당초 엄청난 물건으로 부상한 신형 그래픽 엔진 TRINITY의 처리 문제와 아이디어로 고심을 하던 존 카맥은 ‘싱글 플레이가 없는 게임을 만들면 어떨까’라는 제안을 한다. 엉뚱하기 그지없는 이 의견이 다른 멤버들에게 만장일치로 통과가 되자 카맥은 자신의 머릿속에 그려 놓은 퀘이크3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렇게 ‘싱글플레이가 없는 FPS', 퀘이크3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콘셉트 확정 후 TRINITY의 탑재를 미룬 카맥은 그보다 낮은 수준의 그래픽 엔진을 제작한 뒤 굉장히 빠른 속도로 게임 제작을 마치게 되었다. 하지만 게임 제작 시간에 비해 퀘이크3의 발매는 몇 달 늦춰지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싱글 플레이를 배제한 멀티 플레이 전용 게임이었기 때문에 캐릭터 모델링 자체에 많은 신경을 썼기 때문이었다. 한 캐릭터 당 평균 350프레임을 사용했으니, 시간이 많이 걸릴 법도 했다.



많은 고민과 개량 끝에 또 다르게 의식되어진 것은 바로 퀘이크 시리즈와 비교되고 있던 언리얼 시리즈에 대한 견제였다. 퀘이크2에서부터 비교되기 시작한 에픽게임즈의 언리얼이라는 작품에서 ID소프트웨어의 수뇌부는 충분히 위기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게임 기술 장인이었던 존 카맥에게 있어서 반드시 ‘외향적으로 발전해야만 하는’이유가 되었다.

때문에 퀘이크3에서의 엔진은 퀘이크1의 풀폴리곤화와 퀘이크2에서의 색체 광원 등을 합한 기술적 진보를 꾀하게 되었다. 이는 당시 언리얼의 압도적인 기술적 우수성에 영향을 많이 받은 모습이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퀘이크3의 그래픽 엔진은 기존 퀘이크 시리즈보다 더욱 컬러풀해지고 안개효과, 거울반사, 곡면의 표현 등 기술적인 발전을 꾀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물론, 퀘이크3보다 약 1개월가량 먼저 발매된 언리얼 토너먼트의 영향으로 인해(언리얼 토너먼트는 하드웨어 T&L 지원 등으로 더 발전된 엔진의 기능을 보여주고 있었다) 엔진 라이선스 시장에서는 기존의 퀘이크1, 2처럼 큰 반향을 이끌지는 못했지만 아드리안 카맥과 케빈 클라우드가 만들어 낸 텍스처 맵핑, 컬러풀해진 맵 디자인은 당대 최고의 그래픽으로 찬사를 받게 했다.

발전된 엔진으로 인해 그래픽 환경이 전체적으로 발전된 만큼 하드웨어 요구사양도 꽤나 올라가 당시의 PC하드웨어 환경 발전을 이끌기도 했다. 부두3나 리바TNT 2시리즈가 주류를 이루던 당시에는 상당히 높은 하드웨어 환경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낮은 하드웨어로도 좋은 품질의 게임을 즐길 수 있었으니(하단 참조).



퀘이크3는 1999년 크리스마스 북미 게임계를 화려하게 수놓는 폭죽이 되었다. 잦은 발매 연기에도 불구하고 각종 해외 현지 리뷰나 프리뷰, 그리고 현지 팬들에게서 욕 한마디 먹지 않은 게임이 발매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기대감에 답하듯 퀘이크3는 충분히 훌륭한 임팩트를 보여주었고, FPS역사상 손꼽히는 명작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우선 ‘다운 그레이드’한 그래픽 수준이 놀라웠다. 퀘이크3의 해상도는 최대 2048해상도까지 준비가 되어있었는데, 웬만한 그래픽 카드로는 퀘이크3의 최고 그래픽 레벨을 경험하지 못할 정도로 수준이 뛰어났다. 그렇다면 컴퓨터 사양이 낮은 유저들은 좋은 그래픽을 볼 수 없었느냐? 그렇지 않았다. 16비트 수준도 텍스처 디테일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만큼 훌륭한 그래픽 퀄리티를 보여 주었다.

또한 게임 밸런싱 역시 상당히 뛰어났다. 플레이어의 실력이 가장 잘 반영된 게임 중 하나가 퀘이크3였는데, 처음에는 상당히 빠른 게임 전개에 유저들이 적응을 잘 하지 못했지만, 계속 게임을 하다 보면 적응이 되어 게임에 몰입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다. 그 외에 깃발 뺏기 게임 모드인 CTF의 정식 지원. 쿼드 데미지, 헤이스트, 리제네레이션, 배틀슈츠의 파워아이템이 추가되어 더욱 다이내믹한 싸움을 보여주었다.



한편, 퀘이크 시리즈에서 이어지고 있던 오픈소스 공개가 퀘이크3에서도 이루어졌는데, 이로 인해 유저들은 다양한 비주얼 스킨을 사용해 익살스럽거나 유명한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이는 엔진의 발전으로 인해 더욱 디테일하게 구현되어, 게임이 발매된 지 십 수 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유저들의 손을 거쳐 다양한 캐릭터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기도 하다.

퀘이크3의 등장으로 인해 많은 명작들은 퀘이크3의 엔진을 기반으로 한 게임 개발을 진행하게 된다(스타트렉~ 보이저 엘리트 포스, 솔저 오브포춘2, 스타워즈 제다이 나이트2, 다크 셀베이션 등이 퀘이크3 엔진으로 만들어 진 게임들이다). 물론 언리얼1에서 언리얼 토너먼트 엔진으로 업그레이드 된 ‘엔진 시장의 강자’언리얼의 강세로 빛이 바랜 면은 있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엔진 라이선스 시장 자체가 아직 생성되지 않은 시장이었고 FPS라는 장르가 정형화 된 틀이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이었던 만큼 많은 중소기업 게임사들은 물론, 다수의 게임메이커들이 ID소프트웨어의 퀘이크3의 엔진을 모티브로 하여 게임을 개발했다. 가히 FPS시장의 틀을 정립한 게임 중 하나로 손색이 없었던 것이다.

마치 전광석화 같은 빠른 게임 전개에 몰입을 한 유저들은 99년 말을 화려하게 퀘이크3의 해로 만들었다. 비록 1999년에는 뛰어난 FPS게임들이 다수 발매되지는 않았지만, 퀘이크3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만큼 수준이 높은 게임으로 기억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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