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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아픈 과거를 잊고 미래로, 보더랜드 4

작성자 :	등록일 : 2025-09-19 오전 12:14:25

2K는 기어박스 소프트웨어가 개발한 신작 '보더랜드 4'를 9월 12일 국내 정식 출시했다. 플랫폼은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5, 마이크로소프트 엑스박스 시리즈 X|S, 난텐도 스위치 2, 윈도우 PC(스팀, 에픽게임즈 스토어)다. 정식 한국어 더빙과 자막을 지원하며, 국내 심의기관으로부터 미성년자 이용불가 등급을 부여받았다.

2009년 출시된 '보더랜드' 이후 네 번째 정규 넘버링 작품이며, 메인 시리즈에 포함하는 '보더랜드 프리-시퀄'을 포함할 경우 다섯번째 작품이다. 2019년 출시된 직전작 '보더랜드 3' 이후 6년 만에 출시되는 후속작이기도 하다.

'보더랜드 4'에서, 유저는 일종의 우주 보물창고인 '볼트'를 찾아 우주를 떠도는 '볼트 헌터'가 되어 카이로스라는 행성을 방문하게 된다. 그러나 모종의 사건으로 '교단'이라는 조직에 붙잡혔다가 겨우 탈출하는 사건을 겪고, 카이로스를 둘러싼 난장판에 합류하게 된다.

스토리가 전반적으로 엉망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보더랜드 3' 과 달리 확실히 정돈되면서도 '보더랜드 2'에서 보여줬던 광기를 잘 살린 스토리가 전개된다. 다만 대중성을 위해서인지 어느정도 정제된 모습을 보이기는 한다. 딱 유쾌하게 미친놈들이 보고싶다면, 고개를 들어 카이로스를 보라.

물론 '보더랜드 3' 스토리 악평의 화룡점정을 찍은 건 DLC 스토리였던 만큼 추후 스토리 DLC에서 어떤 스토리가 전개되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으나, 본편만 따지면 유저들이 '보더랜드' 시리즈에 기대할법한 스토리가 전개되는 편이다.

메인 빌런인 타임키퍼는 아쉽게도 '보더랜드 2' 메인 빌런인 핸섬 잭의 아성을 뛰어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보더랜드 3'의 칼립소 쌍둥이와 비교하면 상당히 매력적인 캐릭터성을 뽐낸다. 전형적인 독재자형 SF 악역 클리셰를 따르면서도 '보더랜드'다운 변주가 가해졌는데, 기존에 '보더랜드'에서 보기 어려웠던 진중한 성격의 보스가 오히려 신선함을 느끼게 했다.

전작 관련 캐릭터도 스토리에서 종종 얼굴을 비춘다. '보더랜드 3'에서처럼 무의미하게 소비되는 경우는 없으니 안심해도 좋다. 다만 '보더랜드 3' 스토리 악평 중 절반 가량의 지분을 보유한 캐릭터인 아바가 '보더랜드 4'에서는 전혀 얼굴을 비추지 않는데, '보더랜드 3'에서의 행적을 고려하면 외딴 행성에서 객사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으니 개연성은 있는 셈이다.

대형 맵 여러개로 구성된 세미-오픈 월드 구성이었던 이전 작품들과 달리 심리스 오픈월드로 구성됐다는 점도 특징이다. 심리스 오픈월드인 만큼 '보더랜드 2'를 대표하는 넓은 지형인 '고지대(The Highlands)'나 '더스트(The Dust)'를 능가하는 지형을 마음껏 탐험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맵이 넓어진 만큼 이동해야 하는 거리가 매우 길어졌다. 이를 위해 차량 플랫폼이 없어진 대신 어디에서나 차량을 소환할 수 있게 됐으며, 더블 점프나 활공 등 새로운 이동 기술도 생겼다. 이로써 이동성 증대는 물론 고지대에서 지상을 강하게 내려 찍는 특수 근접 공격인 '슬램'을 더욱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게 됐다.

이전 시리즈들과 다르게 유저가 확인한 지형에 놓치고 지나친 수집 요소가 있다면 맵에 표시된다. 일부 유저들에게는 불만스러운 요소일 수도 있겠으나, '보더랜드 2'에서 모든 도전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지도를 해메고 다니던 고통을 떠올려 보면 옳게된 변화로 보였다.

아쉬운 점은 '보더랜드 2' 이후 존재하던 미니맵 기능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대신 일반 플레이 화면 위에 경로를 표시해주는 '에코 네비게이션'이 추가됐는데, 전작 미니맵 기능을 대체하지 못해 꾸준히 전체 지도를 확인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보더랜드 4'가 '보더랜드 3'보다 유일하게 퇴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보더랜드' 시리즈 전통에 따라 초기 클래스는 4종이며, '보더랜드 2'나 '보더랜드 프리-시퀄'과 마찬가지로 DLC 추가 클래스 2종이 추가될 예정이다. 이전 시리즈들과 마찬가지로 클래스별 스킬트리가 상이하기 때문에 다양한 클래스를 육성하며 어떤 클래스가 자신의 플레이 성향에 맞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보더랜드 3'에 이어 클래스를 상징하는 액티브 스킬이 클래스당 3개로 유지됐다. 포지나이트(아몬) 클래스를 제외한 나머지 클래스는 스킬트리 별로 하나씩 배정돼 있으며, 포지나이트는 스킬트리마다 두 가지 액티브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멀티플레이에서는 사이렌(벡스) 클래스가 가장 많이 보이고, 앞으로도 많이 보일 전망이다. 일단 '보더랜드' 부터 사이렌 클래스가 언제나 가장 막강하면서도 운용 난도가 낮았고('보더랜드 2'에서 그로그 노즐 - 루비를 장착한 건저커를 제외한다), '보더랜드 4'에서도 상당히 막강한 성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멀티플레이에서 타 유저와 역할이 겹치는 게 싫은 유저라면 사이렌이 아닌 클래스를 선택하는 게 유리할 수 있다.

기존 '보더랜드'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총기는 여러 부품이 결합돼서 만들어지며, 부품 조합에 따라 능력치와 패시브 효과가 모두 다르며, 약 300억 개 이상 조합이 등장할 수 있다.

이 중 총몸 부품에 따라 총기 제조사가 달라지고 제조사 고유 특성이 부여된다. 전작과 비교하면 총기 제조사 별 특성이 더 다채로워지거나 확실해진 점이 특징이다. 대표적으로 블라도프는 '보더랜드 3'과 마찬가지로 하부 총열이 특징이나, 이번 작에서는 두 총열이 동시에 발사되는 게 아니라 두 총열을 교체해가며 사격할 수 있다.

이외에 '보더랜드 3'에서 두 가지 속성을 동시에 발사하는 대신 충전해서 발사하던 맬리완은 두 가지 속성을 전환해가며 발사하고, 충전 발사는 리퍼라는 신생 제조사로 옮겨갔다. 이외에도 다알 총기가 지니고 있던 점사 효과를 신생 제조사인 교단이 가져갔으며, 마찬가지로 신생 기업인 다이달로스는 탄약 호환성이 높아 탄약 소모가 높은 난전 상황에 어울린다.

종종 두 제조사의 특성을 동시에 보유한 총기가 등장하기도 한다. 예컨대 제이콥스 사의 도탄 효과가 적용된 블라도프 총기 같은 물건이다. 이처럼 언제 어떤 무기가 등장할지 짐작하기조차 어려운 게임이기 때문에 무기를 수집하는 재미가 확실한 편이다.

다만 그만큼 많은 총기가 등장하기 때문에, 자신이 선택한 클래스에 맞는 총기 제조사가 어디인지, 그리고 해당 제조사의 어떤 무기군이 필요한지 파악하고 해당 무기 위주로 빠르게 무기 세팅을 맞추는 게 핵심 콘텐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보더랜드 3'에 이어 이번 작품에도 난이도 시스템이 도입됐다. 전작과 비교해 꽤 어려워진 편인데, 최고난도 기준으로 게임 초반을 넘어가면서 부터 방어 속성과 공격 속성 간 상성을 학습하지 못하면 정상적인 게임 플레이가 어려워진다. '보더랜드 2' 에서는 오버파워 레벨이 올라갈 때 부터 신경써야 하는 요소를 '보더랜드 4'에서는 초반부터 신경써야 하는 셈이다.

전반적인 난도는 올라갔지만, 교전 중에 신경 써야 할 점이 많아졌다는 점에서 칭찬할만 하다. 사실 이전까지 '보더랜드' 시리즈는 (근접 빌드 제로나 크리그 등 일부 예외 사례를 제외한다면) 교전 중 컨트롤 해야 하는 요소가 많지 않았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임시 엄폐물을 찾거나 더블 점프로 적 공격을 피하는 등 한층 흥미로운 전투를 즐길 수 있다.

전작 '보더랜드 3'은 비록 스토리는 엉망이지만 그만큼 전투 플레이와 아이템을 수집하는 재미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보더랜드 4'에서는 한층 더 강화된 게임 플레이 재미를 느껴볼 수 있게 된 셈이다.

한국어 번역 및 더빙 완성도가 높다. 번역은 한국 문화를 이해한 채로 이뤄졌고, 성우들의 캐릭터 이해도도 높다. 번역 상태가 그리 좋지 않은 데다가 캐릭터 해석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잘못된 디렉팅 하에 더빙된 '보더랜드 3'과 비교하면 매우 뛰어난 수준이다.

또한 '보더랜드'와 '보더랜드 2'에서 다른 언어 더빙(특히 클랩트랩 더빙)에 이미 익숙해진 유저들을 위해 더빙 언어와 자막 언어를 서로 다르게 설정할 수도 있다. '보더랜드 3'에서는 지원하지 않았던 기능이다.

최적화 상태는 그리 좋지 못하다. 출시 당일에는 정상적인 플레이가 어려운 상황이었고, 추가적인 최적화 패치와 그래픽 드라이버 업데이트를 진행한 이후에도 버벅임이나 강제 종료 문제가 자주 발생한다.

게임의 모든 장점을 합치더라도 '정상적인 플레이가 불가능하다' 라는 단점 하나가 모든 장점을 덮는 만큼,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추가 최적화 패치가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보더랜드' 시리즈의 역사에는 굴곡이 조금 있었다. 정확하게는 '보더랜드'와 '보더랜드 2'에서 우상향을 그리다가 '보더랜드 프리-시퀄'에서 X축과 평행선을 그렸고, '보더랜드 3'에서 시리즈 존속의 위기를 겪었다.

적지 않은 유저들이 '보더랜드' 시리즈의 스토리에서 희망을 찾길 포기했을 때('보더랜드 3' 스토리 DLC인 '총, 사랑 그리고 촉수 - 웨인라이트&해머록의 결혼'에서 시련의 때를 맞이한 유저가 적지 않았다), '보더랜드 4'는 시리즈가 건재함을, '루트 슈터'라는 장르가 아직 황혼기를 맞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리고 수백억개의 총기를 루팅하며 미친듯이 총알을 난사하는 일이 어쨌든 재미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비록 최적화와 관련된 문제가 조금(사실 아주 많이) 심각하긴 하지만, 적어도 게임 플레이 측면에서 '보더랜드 4'는 크게 지적할 부분이 없는 수작 루트 슈터로 출시된 셈이다.

겜툰 박현규 기자 news@gamtoon.com